[스크랩] 남한산성
남한산성 행궁 뒤 청량산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
(성을 호령 하던 그때 그 장수들은?)
남한산성 성곽(슬퍼보이는 성벽과 망루)
남한산성 성곽
(돌 하나하나에 정성들려 다듬어서쌓은 성벽이)
인조임금이 청태종에게 항복하기위해 나간 서문
{제일 가파르고 험하지만 청태종 진영까지 가장 가까운 길 이였기에}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역사를 스스로 기록하여 세운 삼전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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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370년 전 오늘
1637(인조17)년 1월 30일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의 날이며
조선역대 임금중 가장 슬픈 임금,인조왕이 굴욕적인 항복을 한 날이다
청태종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남침한지 불과 일주도 안돼서
한양 궁궐을 버리고 이곳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인조왕은
청태종이 지금의 송파구 삼전동 허허벌판에 진을 치고
남한산성을 포위한지 40일만에 굴룍의 항복을 한
치욕의 날이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서문을 통하여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
지금의 마천역을 거쳐 청태종 앞에까지 가서 삼배구고두의
예로서 항복한 날이다
한번 절 하고 세번 이마를 땅에 부닥치기를 세번 반복하였으니
임금의 얼굴에는 선혈과 눈물이 두범벅이 됐을것이다
항복할때 조선은 청국을 군신지국으로 섬기게 하고
세자와 대신과 그 자식들을 인질로 내주며
해마다 수천명씩 조선 처녀들을 보낼것,
쌀과 비단을 받히며 일본을 공격할 군함을 만들게 하였고
항복한 이자리에 청태종의 공덕을 치하 하는 기념비를 스스로
만들어 세우게 하니 이비가 위에서 본 치욕의
삼전도 비 이다
율곡 선생의 10만양병의 진언만 받아 들렸다면
임진왜란의 8년이란 긴 아품도 없었을 것이요
그후 임란을 교훈삼아 당파 사움만 하지말고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면
이와같은 병자호란의 치욕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 대함민국은 과연 잘 가고 있는 것 인지?
걱정이 아닐수 없다
수치스러운 과거의 역사를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에게
옳 바로 알려주고 깨우쳐 주어 후대에는 이와 같은
집권 다틈의 당파 싸움 없이 나라의 이익 국민을 위한 정치가
판치는 그런 세상이 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가끔 가는 산성이지만 2002년 7월 9일 초여름에
다시 찾으니 추운 겨울에 쌀도 물도 없이 항거하다 항복 할수 밖에
없었던 그때를 슬프게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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